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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GTN - 시진핑 주석이 부친으로부터의 받은 가르침의 핵심

CGTN
2022-05-25 18:28 1,309

(베이징 2022년 5월 25일 PRNewswire=연합뉴스) 2001년 시진핑 중국 국가주석이 중국 동부의 푸젠성장으로 있을 당시, 그는 부친 시중쉰의 생일날 보낸 감사 서한에 "아버지로부터 본받고 싶은 귀한 자질이 많다"고 적었다고 한다.

시중쉰은 중국공산당(CPC)의 1세대 중앙지도자 중 한 사람이었다. 시 주석은 부친이 자신에게 베푼 지혜를 종종 회상하곤 한다.

'인민'이라는 용어는 시 주석이 그의 부친으로부터 받은 모든 보물의 핵심이다.

인민의 인물

시 주석은 "할아버지는 농민이었고, 아버지는 농민으로 혁명에 참여했으며, 나 역시 7년간 농민으로 일했다"고 말한 적이 있다.

농업혁명 기간에 스물이 넘지 않았던 시중쉰은 산시-간쑤 혁명 국경 지역 건설에 전념했다. 그는 "대중의 지지가 없다면, 우리에게는 아무것도 없을 것"이라고 종종 말하곤 했다.

시 주석은 2015년 춘절을 기념하기 위해, 올 2월 중순에 중국 북서부 산시성의 작은 마을인 Liangjiahe를 방문했다. 이 방문은 도시 출신의 중국 국가주석의 귀향이었다.

53년 전, 시 주석은 16살이 되기도 전에 '교육받은 젊은이'로 Liangjiahe에 보내졌다.

이후 그는 시골 마을에 살면서 그의 인격에 가장 큰 영향을 미친 7년을 보냈다. 황투고원의 일부인 이 지역은 부친을 포함한 공산주의 혁명가들이 신중국을 건설하기 위해 궐기한 곳이기도 하다.

시 주석은 "당시 황무지를 개간하고, 농사를 짓고, 괭이질을 하고, 가축을 몰고, 석탄과 퇴비를 나르는 등 온갖 일을 했다"고 회상했다.

시 주석은 자서전에서 "인민의 공복으로서, 나는 북부 산시 고원에 뿌리를 두고 있다. 그 이유는 그곳에서 인민을 위해 실질적인 일을 하겠다는 불변의 사명을 키웠기 때문이다. 내가 어디에 있든, 나는 늘 그 황투고원의 아들이다"라고 썼다.

인민을 위한 인물

시중쉰은 아들에게 "직위가 무엇이든 간에 인민을 위해 부지런히 봉사하고, 인민의 이익을 성심성의껏 고민하며, 인민과 긴밀한 관계를 유지하고, 인민에게 항상 가까이 다가가라"고 충고했다.

시 주석은 어린 시절부터 관사를 꾸미는 데는 하등 관심이 없었다. 그는 며칠 동안, 때로는 산으로 여행을 다니며 민초들과 이야기를 나눴다. 그렇게 해서 그들의 어려움에 대해 배우고, 문제 해결에 발 벗고 나섰다.

1980년대에 동시대의 많은 이들이 사업하거나 유학을 떠날 때, 시 주석은 베이징에서의 편안한 사무직을 포기하고 중국 북부 허베이성의 작은 현에서 당서기로 일하는 것을 선택했다. 후에 그는 당시 중국 동부 푸젠성에서 가장 가난한 지역 중 하나인 닝더현의 당서기가 됐다.

닝더에 있는 동안, 시 주석은 포장도로에 접근할 수 없는 4개 마을 중 3곳을 포함해 거의 모든 마을을 방문했다. 서우닝현의 산악 지역 깊숙한 곳에 자리 잡은 Xiadang도 그러한 마을 중 하나였다. 당시 Xiadang 농민의 1인당 연평균 순수입은 200위안(약 40달러) 미만으로, 푸젠성에서 가장 가난한 마을 중 하나였다.

2013년 11월, 시 주석은 중부 후난성을 시찰하는 동안 당시 '빈민'으로 분류된 묘족 마을인 Shibadong을 방문했다.

시 주석을 집으로 맞이한 마을 주민 Shi Basan이 시 주석에게 "당신을 뭐라고 부르면 됩니까?"라는 질문에, 그는 "나는 인민의 공복"이라고 자신을 소개했다.

약 50년간의 정치 생활 동안, 시 주석은 민초의 당 서기에서 공산당 지도자로, 일반 시민에서 국가 주석으로, 그리고 평범한 장교에서 중앙군사위원회 주석으로 성장했으며, 그 기간 내내 중국 인민의 더 나은 삶을 위해 헌신했다.

https://news.cgtn.com/news/2022-05-24/The-key-Xi-Jinping-learned-from-his-father-1ai5sxTnqiA/index.html 

출처: CGTN